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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편들에게




2016 - 7 - 7


안녕하세요.

10년전에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올해 그림을 그리게 된지 10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아직 힘들다 하기도 이르고, 학부를 졸업한지 6개월째이고 작가활동을 시작한지 그만큼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제 그림을 봐주시고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어 제가 그림을 지속할 힘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2016 - 12- 23


안녕하세요.

우선 제 그림을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가 벌써 일주일 밖에 안남았다는 사실이 정말 어색한 날들입니다.

일주일뒤에는 2017년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어색하게 보일 것 같아요.

올해를 정신 없이 보냈습니다. 전시도 7번 가량 했고, 제 이름이 걸린 책도 나왔었어요.

큰 기업들과 콜라보를 하기도 했구요.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꿈같은 한해 였습니다.

작년 이 시기에는 지금의 제 모습을 그리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항상 한해가 끝나갈 때, 내년의 나의 모습은 어떨지 항상 상상해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실은 상상하던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 되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도 그림을 지속 할 수 있을 지 몰랐거든요.

가끔은 누워있다가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작년에 그림을 놓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조금 아찔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내년의 내가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을까? 를 걱정하고 있어요.

또 내년이 되면 똑같이 '작년에 그림을 놓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를 생각하겠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니까요.

지금도 우리는 선을 긋고 있으니 완성된 그림은 어떨지 아직 모르는 것이지요.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선을 믿고 내년에도 이렇게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작년에 꿈꾸던 모습, 그리고 재작년에 꿈꾸던 모습, 더나아가 10년전의 꿈꾸던 모습,

지금의 자신과 일치하고 있나요? 그린대로 이루어 지는 한해 되세요.







2017 - 3 - 10


여전히 곧은 선을 긋고 계신가요.

저는 올해 초부터 조금은 거칠고 두꺼운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조금 많은 부스러기들이 생겼어요.

그렇단건, 조금씩 벽에도 부딪히고 있는 것이겠죠.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이 벽 또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넘어야할 것, 뚫고 지나가야하는 길, 저는 아마 그 앞에 다시 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넘어야 하는지 무엇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단 건 스스로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도전하고 꿈꾸는 삶.


저는 평생 꿈꿔왔던 일이 개인전을 여는 일이었는데요. 작년 여름에 조금은 갑작스럽게 그 꿈이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고 나니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행복하다’ 보다 더 큰 ‘허망하다’였습니다. 코앞에 있는 꿈을 하나 이루고는 그 다음에 먹고 살아야 할 꿈이 없으니 허망한 것이었겠죠.


큰 꿈이 아니라 결코 작은 꿈이더라도 하나씩 이루어 가는 삶, 조금씩 점점 더 큰 꿈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각자의 선을 가진 채로 나아가시길.







2017 - 7 - 11


안녕하세요 너무나 빠르게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한창입니다.

요즘은 매일같이 오는 비에 더위에 금방 지쳐버리죠...



최근에 저는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전시를 하기도 하고 여러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기도 해요.

다음달에는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새로운 전시가 열려요.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도 많구요.

15년도, 졸업전시를 준비할 때를 생각하면 꿈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덕분에요.



저가 21살때,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때 들었던 교수님의 말은 아직도 저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그림에는 불필요한 선과 터치가 없어야해. 모든 손길들이 필연적이어야 하지. 그 자리가 아니면 안되는 자국들로 가득차야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는 거야"



저는 이 말로 시작해서 지금 여기까지 도착했어요.



필연적인 선들로 가득찬 작업을 하고 싶었고 필연적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확실히 세워두고싶었어요.

그림에서 뿐만아니라 제 삶에서도요.



하지만 우리는 그림과는 달랐어요. 실수도 하고 잊고싶은 일들도 있지요. 필연적인 일들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어요.

지워진 자국들은 곧 결과물을 더 풍부해보이게 만들어줘요. 깊이가 생기는 것이겠죠.

우리 역시 지워진 자국들로 하여금 풍부한 삶을 만들어가길 바라요.

늘 고맙습니다.







2017 - 9 - 24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 잘 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정말 더위에 약해서 힘든 계절을 보냈어요. 요즘은 날도 선선해서 몸도 나른해지고 잠도 잘 오네요.


덕분에 지난 계절에도 많은 애정을 받으며 작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도 잘 마쳤고요. 제 글이 담긴 첫 책도 나왔어요. 저는 그 덕에 처음으로 부모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고 참 행복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한가지 일로 지속 가능한 기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행복한 일을 만들어주어야 그 행복감이 유지된다고 하더군요. 좋은 일만 계속 생기길 바라야 하는 걸까요?


저는 제 그림처럼, 진하게 그려진 부분에도, 또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에도,  중요치 않은 부분은 없다고 믿습니다.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그림입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에, 우울할 때의 ‘나’에 집중하는 연습을 합니다. 좀 더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거겠죠. 나를 잘 알고, 나를 애정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요. 행복하건, 그렇지 않건, 함께 존재할 때에 ‘나’라는 그림이 완성 되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저의 우울함은 저의 작업으로 표현됩니다. 또 작업으로서 저는 행복함을 느끼고요.


제 그림처럼, 가끔은 짙게 가득 차고, 또 여백으로 남겨두더라도, 당신만의 삶을 그리시길 바랍니다.









2017 - 12 - 2



안녕하세요.

올해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이맘쯤 보내드렸던 메일에서는, '내년의 나'를 상상해보시면 좋겠다고 이야기드렸습니다.

작년에 꿈꾸던 것들 올해 이루셨는지요.



최악을 생각하면 그나마 낫다...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내년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나을 순 없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했지요.



저는 항상 최악 중에서도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아요.

어쩌면 약점일 수도 있겠어요. 사소한 일, 실수도 크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뒷일 생각없이 붓질을 하거나, 선을 긋습니다.

'여기 이 색을 해도 괜찮으려나?' 하는 망설임도 없이 그리다 보면 정말 내가 그림 위에 쌓이고 쌓인 실수들을

수습해야 할 상황이 올 수 밖에요.



그때는 또 다른 색을 덮거나, 아예 연필선을 문질러서 번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노력이에요.

결과물은 어땠을까요. 분명 내가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 나오는 한편, 우연처럼 쌓인 선과 색이 만들어내는 깊이가 생깁니다.

내가 의도했다면 아마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그림이요. 순간순간 엇나가는 터치의 중첩들로 나오는 그림입니다.

그렇게 실수와 착오의 중첩은 깊이를 만들어내더군요.

그림그리는  일처럼 삶도 의연하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러나 분명 완벽하려 하면 오히려 시시한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내년에도 역시나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하고 부딪힐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로인해 더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좋은 연말 보내세요.







2018 - 3 - 13


안녕하세요.



벌써 몇 년째 편지 보내드리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 잘 지내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의 온도는 마냥 봄같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꽃도 피겠죠.

날씨는 봄이 오고있다쳐도, 요즘 스스로의 온도는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봄같으신가요?

얼마 전에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그런 질문을 했어요.



요즘의 너의 마음 온도는 어때?



그렇게 물었더니 이렇게 물어봐주는 사람이 그 동안 거의 없었다고 이야기 해주더라구요.

저의 요즘 온도는 따듯하거든요. 그런데 상대의 온도가 나보다 더 뜨겁다면 내가 너무 차갑게 느껴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 온기를 나눠줄 수 있겠죠.



그래서 우리 지금의 온도가 서로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야 편하겠다- 싶으면서도,

저는 평소에 너무 차가운 사람이더라구요.

저는 제가 너무 불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깊은 우울증을 앓고, 몇 번의 좋지못한 시도를 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해 받아야 살 수 있고, 저는 작업물로서 그 온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저에게 많은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은 많은 독자분들이에요.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하면서.

처음 그림들을 온라인상에 올리기 시작하고, 작업노트들을 적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의 이야기였습니다.

매번 진심으로 진정성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니 미미하게 나마 저의 온도가 많은 분들께 닿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의 그림과 글에 담은 작은 온기라도 가져가셔서, 마음이 차갑다면 부디 그 마음 녹이시길 바랍니다.



그림그리는 일이 굉장히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작업할게요.



세상에 혼자라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저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기억해주시고,

문득 제 공간에 들어와 한참 시간을 보내고 가셔도 좋습니다.



따듯한 봄 되세요.

늘 고맙습니다.







2018 - 5 - 31


안녕하세요. 작가 성립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 괜히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괜히 커피라도 한잔 더 마시러 나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요. 어제 밤에 메일을 보내드리기로 했었는데, 밖에서 차근차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카페 테라스에 앉아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시간이 빨라요. 이렇게 3개월에 한번씩 편지를 쓸 때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를 되돌아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곱씹어봅니다.

저는 올림픽 작업을 마치고는 여러 곳을 여행 하고, 강연들을 하기도 했고, 책을 간간히 쓰고 있습니다. 작은 프로젝트들을 마쳤고, 그리고 새로운 커다란 프로젝트들을 시작할 준비를 이제야 마쳤습니다.



어쩌면 지난 세 달은 저에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즐거움을 어디서 찾아야할 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그림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림만 그려서는 작가활동을 꾸준히 하기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최근에 만났던 사람은 제게 이런 얘기를 해주더군요. 자기는 평생 자기를 속여오면서 살아온 것 같다고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속여오면서 그 기준에 맞춰 살아오지 않았나 했다고요. 아트 살롱에 참여 했었던 그 분은 그림을 그릴 종이를 받아가고는 아무 것도 그려오지 않았었는데요.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단순히 이렇게 이 곳에 앉아있는게 좋았다. 모두가 그림을 그렸는데 괜히 나도 같이 그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데 그림을 그려 그것에 대해 가짜로 이야기 하는 것은 또 나를 속이고, 상대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래요. 작업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억지로 무엇인가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최근 저의 딜레마도 그것이었어요. 머리는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 않고, 몸은 계속해서 움직여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요. 그림을 잠시 놓고 싶어도 못놓게 되는 것, 내게 그림은 즐거운 일인데 스스로 즐겁지 않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수업 할 때, 항상 사람들에게 “그림은 즐거울 만큼만 그리세요!” 라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저는 그러지 못하고 있던 게 참 우스워요.

잠깐 쉬자구요. 커피 한잔하면서요! 








2018 - 8 - 7


안녕하세요. 잘지내셨어요?

저는 요즘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동시에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깨어있을 땐 밖에 나와 사람들을 구경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책도 읽어요.

그렇게 여유 없는 삶은 아니죠? 지금도 저번 편지 때 처럼 커피 한잔 하면서 편지를 쓰네요.

오늘은 보고싶은 영화가 있어서 맨 뒷자리를 예매해놓았어요 :)

해가 지고 사람들이 쉴 때 즈음 작업을 시작하려 책상 앞에 앉아요.

그렇게 고요한 밤에 그림을 그리고, 하루동안 받은 영감들을 정리해요. 그리고 해가 뜨면 제 하루가 마무리 돼요. 요즘은,



벌써 10번째 편지라는게 기분이 이상해요. 사실은 그렇거든요.



나는 꼭 대단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기 커다란 산 꼭대기에 꼭 올라가고 싶다고요.

그래서 내가 너무 낮은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나봐요.

그래서 길을 따라 그 꼭대기만 보고 가는데,

갑자기 길을 벗어나서 초원을 걷는 느낌.  

앞에는 딱히 뭔가 보이지 않고 뒤를 돌아봐도 내가 걸어온 발자국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이요.

2년6개월이 딱 되었네요. 졸업하고 작가생활을 한지요. 허허벌판을 참 많이도 걸었어요! 발자국도 꽤 길어진 것 같고요!

이제는 꼭 보이는 곳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따라가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어요. 바람이 부는 쪽으로.

꼭 대단한 목표를 세워야 할까요? 전혀요.

저 이제는 조금 적응한 것 같아요. 불안하지 않아서요.

이제는 제 손을 믿는 걸까요. 많이 내려놓은 걸까요?



항상 불안, 우울, 불투명한 미래에 관한 생각을 했어요.

느끼셨을 것 같아요. 제 글을 오래동안 봐주셨다면,



저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었죠?

하지만 항상 생각했던 것 보단 괜찮았다고,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막막하다면, 다시한번 느껴보세요.

내 옆으로 바람이 불고 있지 않은지!






2018 - 11 - 5



안녕하세요 작가 성립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무척 더워서 밖에 나가는게 무서울 정도 였는데, 벌써 찬바람이 부네요. 3개월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번의 강연과 두개의 전시, 두개의 콜라보 작업을 하고, 두 권의 책 작업을 했어요. 덕분에 정신없이 흘러갔네요 시간이,

이제 저를 ‘작가 성립’ 이라고 소개하는 일도 익숙해졌고요.



최근에는 일주일 간 부산에 다녀왔어요. 부산은 서울보다 조금 더 따듯했고, 사람들은 생각만큼 친절했어요.

생각을 덜고 싶어서 간 부산인데, 오히려 너무 많은 걸 느끼는 바람에 머리와 몸이 무거워져서 (살이 찌기도 했지요)

돌아왔습니다. 바다 앞에서는 저는 너무 작은 사람이더군요.

사실 최근은 자존감, 자신감이 너무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찰나였어요.

좋지 못한 일은 항상 겹쳐서 일어나잖아요. 이유 없는 우울도 생기고요.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행동해보았는데 통 나아지지 않았네요. 그래서 그 찰나에 부산으로 갔어요.

작업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이 아닌 다른 일만 찾아 하더군요. 그림 그리기가 내키지가 않은 거겠죠. 그간 이런 일은 거의 없었는데요.

제 감수성이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항상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래도, 예민한 감수성이 있으니

지금처럼 작업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근데 요즘 저는 그것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일이 많았어요. 나는 왜 무디지 못하지?



흠, 몇 년 전 썼던 글인데, 이번 책 ‘틈’에 넣으면서 다시 읽은 글,

저에게는 스스로 도움이 되어서 혹시나, 저와 같은 생각 중이라면, 도움이 될까 싶어 인용해요.



먼지



5년 전쯤 처음 샀던 노트북 액정에 먼지가 하나 들어갔는데, 한참 눈에 거슬려 하면서도 빼지 못하고 몇 주가 지났었다.

그러다 언젠가 한번은 그 먼지를 빼고 싶은 마음에 액정을 분해하다 유리를 깨먹었다.

겨우 먼지 하나 있는 거 못 견디고 이 사달이 났을까 자책했는데, 지나고 보니 알겠다. 그땐 그 먼지 하나가 돌덩이보다 크게 느껴졌을 거라고,

지금은 아예 노트북을 쓰지도 못하게 됐지만, 아쉬워도 분명 그땐 안 뜯고 못 배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시야는 좁고, 내가 사는 세상도 좁았기 때문에, 작은 일 하나 쉬이 넘기지 못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엔 유치원이 내 세상의 전부이고, 사춘기 때에는 친구들 일만큼 신경 쓰이는 문제도 없다.

내 세상은 좁았고, 좁고, 좁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유리를 깨는 거친 방법이라도 우리는 그러면서 성숙하는 거라고. 그러곤 지금의 먼지들을 더 작게 보려는 습관을 새로 들이기로 했다.




저는 아직, 먼지를 작게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야죠.






2019 - 1 - 10


작가 성립입니다.

올 겨울은 조금 덜 추워서 참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굉장히 추워져버렸네요.

연말도 잘보내시고 새해도 잘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굳이 잘보내지 않으셔도 되는건데 말이죠.

저는 연말이나 새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인데

다들 ‘행복한 연말보내기’ 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괜히 심술도 나기도 했었지요.



그 심술에 괜히 ’유별나게 새해보내기’ 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궁금하시지 않을 이야기 일 수 있겠지만 새해에 하고 있는 것과 결심한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서요.


하나는 작업실을 이사 중 이라는것, (오늘은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조명을 공사를 했답니다.)


오롯이 제 작업공간을 갖는 것이 처음인데요. 그동안 왜이렇게 미뤄왔는지 모를 정도로 삶에 에너지가 생겼어요.

정말 몇 년만에 갖는 기분이라 괜히 설레여서 아침일찍부터 새벽까지 공사를 서둘러 하고 있지요.

제게 이번 1월은 조금 숨을 고르는 달이라서. 그 틈을 타 자꾸만 뭔가 하고 싶나봐요.

계속해서 미뤄왔던 이유는 사실 변화가 싫어서 에요.

변하는 것은 나 자신를 잃는 것인가 싶어서

몇 년간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겁먹고 있었는데요.



‘나는 원래 이런사람’ 하고 자꾸만 저를 정의 내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비슷하더라도 매일매일이 다른 삶을 살고 있더군요.

그리고 또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고요. 나는 매일매일 변하고 있는데

왜 변치않음을 내게 강요 했던 걸까요?



새해 어떤 심술을 내셨나요?



다음 편지 까지 3개월인데 그 사이에 제게 많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자세히 알릴 수는 없지만 곧 좋은 소식도 알릴게요

그때까지 각자의 선을 긋다가 또 만나요!





2019 - 6 - 25




안녕하세요. 잘지내셨죠.

왠지모르게 굉장히 오랜만인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한 자,한 자 적어내려가는 기쁨도 오랜만이고요.

3개월 마다 편지를 쓰는 일도 이제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죠.

전시가 끝난 후에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어요 지금은:)



여전하신가요?

여전히 가끔은 가만히 앉아 사색을 하기도,

차창 밖을 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하시나요?

저는 가끔 변해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변해갑니다. 사소한 행복을 잃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무뎌져가는 것일 수도 있죠.



저는 항상 밤 늦게,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난 후 귀가합니다.

얼마 전 집에 들어갔을때,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간식들을 봤어요. 저는 그걸 보고 한참동안 눈물이 났습니다.

기억도 안날만큼 오래 전, 제가 맛있다고 했던 간식들을 사오시더군요. 오래오래, 여전히요.

과자들, 몇백원, 몇천원짜리 과자들에 저는 한참 말없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소리없는 응원이겠지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소한 행복을 잃는 것이 아니라 놓치고 있었군요.



사실 최근에 저는 공황을 겪고 있습니다. 심하지 않았던 증상이 최근들어 심해져서,

작업을 지속하며 치료를 병행해보려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 넋두리가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 사소히 행복한 삶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색과 감상, 사소한 행복들 놓치지 않고요.

작업을 응원해주는 분들 덕에 큰 힘이 납니다. 행복한 작업 지속할게요. 부디 다음 편지까지 건강하세요.





2019 - 9 - 4



안녕하세요

이제 몇번째 편지인지 세는 것도 의미 없어질 만큼 여러번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게 처음받는 편지거나 이미 많은 편지를 받아왔더라도 편하고 달가운 소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덕분에 잘 지냅니다.

건강한 고민들을 하고 맑은 생각들을 합니다. 요즘 들어 좋아진 날씨 덕분이기도 하지요.

요즘 저는 애써 자기연민을 줄이고 그 마음 타인에게 가지려 하는 중입니다.

다른 사람의 결핍을 말로서는 위로한다고 말하고도, 결국 그 연민은 스스로에게 하더군요.

자기연민만 많아지는 것이죠.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아마도 제게 이너무 많은 결핍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것은 곧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생각들이 맑지 않아요. 시야도 탁해집니다.



왜 우리는 불행을 경쟁할까요?



맨몸으로 태어나 많은 걸 이미 많은 걸 걸치고 있는걸요.

몇 일전 친구를 만나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항상 밑으로 떨어지는게 무서워. 지금보다 더 안좋아지면 그땐 어떡하지?”

친구는 “야, 만약 너가 원점으로 돌아가더라도 넌 손해보는게 아무것도 없어.

지금보다 몇 단계 떨어져도 넌 손해보는게 아니야” 라고 하더군요.

20년 전의 나는 아마 지금의 나를 존경할 겁니다.

10년 전의 나도 아마 지금의 나를 존경하겠죠.

오늘의 나는 왜 나를 존경하지 못할까요?



우리 다음 계절까지 건강해요~ 마침표는 찍지 않을게요







2019 - 11 - 20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데 계절과 시간을 실감해요.

이번 가을은 의외로 길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었는데, 겨울은 볕이 짧아 상대적으로 마음이 쳐지는 계절이래요.

그 말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오전 시간이나 오후 늦게 집 밖에나올때 눈이 부시게 비추는 햇볕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가을이 지나가는게 너무 아쉽습니다.



지나가는 계절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만난 작업자가 있었는데요.

우리의 첫인사는 "여전히 작업하시죠?" 였어요.

물론 작업한다고 대답했고 다음 인사에서도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안부인사가 특이하죠?

저는 매 해의 끝자락 마다 내년의 계획을 세워두는 편인데요.

항상 뜻대로 되는 법 없고 잘되기도, 실패하기도 합니다.

올해도 많은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겪었네요. 어떠셨나요?

저는 다음 인사에서도 "여전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어서

산문집을 내기로했고, 봄이 되면 개인전을 열어요.

올해 초 했던 전시로 많은 이야기와 그림들을 보여드려서,

이제 당분간은 전시로서 할 말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사이 할 말들이 생겼나봐요. 벌써부터 두근두근 합니다.



최근에 몸무게를 쟀어요. 4키로그램 정도 빠졌더라고요. 저는 몸무게가 나가는 편이라서 4키로정도는 아무 티도 안나지만 !

왜 빠졌을까 생각해보니까,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더라고요.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먹는 거 잖아요.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먹는게 전부고, 가장 중요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먹는 것보다 중요해지는 일들이 많아지나봐요.

일을 하거나, 예민해지거나, 신경쓸 곳이 많아질 수록 먹거나, 쉬는 일이 점점 줄죠..

사소한 것들을 챙겨야하는데 점점 잊어버리고요.

정말 신경쓸 곳이 너무 많아져요.
불꽃놀이의 폭죽이 터진 후 쏘아올린 빛 아래로 흰 연기들이 떨어집니다.
화려한 불꽃의 빛보다 밤하늘에 잘 보이지 않는 흰 연기들은 불꽃들의 영혼일까요?
최근에 불꽃놀이를 보다가 어쩌면 흰색 연기들이 더 자유롭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은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래요.  다음계절까지 안녕하세요. 
그래도 그 중 가장 중요한 거는 건강이에요. 끼니 거르지 마세요. 저도 잘 챙겨먹겠습니다.





2020 - 1



두 번으로 나누어 주는 마음


날이 춥습니다. 이 차갑고 건조한 날씨는 고요하고 정적이네요. 텅 비어있는 느낌이지만 저는 이 공기가 괜스레 무겁게 느껴집니다. 소란스러운 연말을 지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고 나니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가끔 들리는 새해 인사를 제외한다면요.

그런데 연말 연초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말만 되면 이번 해를 지워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합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각자 다시금 빈 종이를 하나씩 받습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불편한 숙제 하나씩을 부여받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던 걸까요? 저는 매년 받는 종이를 달력 넘기듯이 넘기기도, 찢어 없애버리고 싶지도 않더군요. 그냥 그리고 쓰던 종이 그대로 이어 쓰고, 이어서 그리고 싶은데 모두 새로 시작하고 싶은가 봅니다. 아무렴 그렇죠. 불편했던 감정들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훌훌 잊고 새로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벌써 작가로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 그리고 제 작업을 하면서도 중요시하게 되는 부분이 한가지 생겼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작업을 하면서 쌓아온 과거의 작업들입니다. 지나온 작업들은 사라지지 않고 작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현재의 작업을 깊이깊이 들여다보면 그제야 뒤에 따라온 과거의 작업들이 보입니다. 마음에 들어오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과거 작업을 많이 찾아보는 편입니다.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어떤 생각들을 해왔는지,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서 몰두하는 사람인지요. 그러면 조금 더 현재의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나의 작업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그림을 그릴 때 과거의 그렸던 그림들, 과거에 했던 생각들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 편입니다. 도움을 받고자 지난 일기장이나 그림들을 살펴보면 꼭 다른 사람이 쓰고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간 덮어놓고 지낸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겠죠. 그사이에는 버려야 할 만큼 못 그린 그림도, 읽기 불편할 정도로 불쾌한 감정도, 부끄러운 순간들도, 잊혀진 사랑도 있습니다. 종이를 덮어버리면 다시 낯선 감정이 되겠지만 끝까지 곱씹어 봅니다. 그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면 지난 기록들을 살펴봅니다. [데상트]와의 협업 작업의 컨셉 [Life shines brighter when I have various lines in myself]와 최근 [keshi]와 만들었던 비디오 [summer]의 첫 장면에 나오는 시 역시 과거의 글들에서 발전시킨 작업들입니다. 현재의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과거의 감정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롯한 지금은 한정적이고 범위가 좁습니다. 반면 쌓아온 삶은 방대하지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해들을 덮어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지난여름에는 제가 인물을 처음 그리던 때의 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연필을 주로 쓰기 시작한 시점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정말 숨기고 싶을 정도로 잘 그리지 못했더군요. 부끄러움과 다짐을 함께 담아 깊이 넣어 놓았었나 봅니다. 한번은 제 드로잉 수업을 듣는 분들께 망친 그림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며 오직 지금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요. 제가 서툰 선을 긋고 싶다고 해서 이제 와 서툰 선을 다시 그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런데 되려 제가 지난 그림을 숨기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함을 느꼈지요. 과거의 그림은 큰 자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내가 쌓아온 부끄러움 또한 빠짐없이 나의 귀감이구나.


그래서 최대한 많은 감정들을 붙잡아보려 매일 단어 하나, 한 문장으로라도 과거를 만듭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이번에도 지난 과거들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그중 ‘두 번으로 나누어 주는 마음’ 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이었어요. 제 어머니는 제가 기억을 가진 순간부터 항상 무엇이든 두 번씩 주셨습니다. 하나가 있더라도 꼭 두 번으로 나누어. 밥을 퍼 주실 때도 주걱으로 크게 한 번 퍼준 뒤 작게라도 한 번씩 꼭 더 떠 주셨습니다. 빵이나 과자를 사 오실 때도 두 개를 사 오셨고, 자신의 밥을 덜어 주실 때도 꼭 두 번 주셨죠. 십수 년 전, 한 번은 왜 그러냐 물었더니 ‘사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구태여 그것이 왜 사랑인지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사랑’이었으니까요. 하나로는 불충분한 ‘사랑’. 한 번 더, 하나 더 내어주는 마음.

최근 자주 혼자 밥을 먹고,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지 않은 지 오래되어가면서 ‘사랑’을 본 지 오래되던 즘, 문득 생각이 나 메모해놓았던 ‘두 번으로 나누어 주는 마음’, 그리고선 집을 둘러보니 여전히 두 종류의 빵과 간식, 포장된 음식들마저도 제가 듣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는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그 말이 문득 떠올라 밥을 두 번으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아마도 저 또한 미래에 아이를 갖는다면 밥공기 가득 두 번 담아 주겠죠. 이렇게 과거와 연결되어 사는 저를 다시 한번 마주합니다. 덮어놓았다면 언젠가 휘발되었을 ‘사랑’ 또한 귀감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내게 휘발된 ‘과거’는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요. 소풍 가기 전날의 마음 같은 것이요. 그게 아까워서인지 과거를 남기는 방법을 글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길을 걸으면서 하루를 음성으로 녹음하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기억하려 계속해서 기록합니다. 영감의 부재가 지속되는 요즘 언젠가 큰 귀감으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빈 종이를 받았습니다만 그리던 종이에 이어 붙여 그려봅니다. 계속해서 이어 붙이다 보면 저만의 커다란 세상이 될 거라 믿어보기로 합니다. 덮어놓지 않고 열어두면 언젠가 멋진 영감으로서, 부끄러움으로서, 사랑으로서 다시 느껴질 순간을 기다리면서요.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해엔 이어 붙이고, 기록하고 싶은 과거들이 있었나요?


2020년 1월의 겨울

성립







2020 - 2 - 1



안녕하세요. 

겨울이 거의 다 지났어요. 한창 미세먼지가 극성이더니 이제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마음 놓고 나가는게 어려워지네요.

건강 조심하고 계시죠? 몇 번째 편지인지 이제 세기 헷갈릴 정도로 쌓이고 있는 것 같아요.

뿌듯하기도 하고 한 켠으로는 매번 어떤 감정을 전달해드렸을까 걱정도 됩니다.

저는 마음이 분주한 연말과 연초를 보내느라 정신없이 30대를 맞이 했어요. 여러가지 맞물린 일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누워도 잠은 안오고, 새벽엔 밖을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했어요. 불안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죠.

집에 있거나 작업실에 앉아있으면 머릿속이 꽉 차서 일부러 밖에 나가 시간을 보냈어요.

한 번은 차안에 오랫동안 앉아 지난 작업물을 봤답니다. 그 중 눈에 띈 작업 제목은 ‘잊혀지기 위한 노력’.



제가 3년전 즘 작업한 영상인데, 그냥 한 사람이 서서 옷을 입는 그림이에요.

나는 어쩌면 매일매일 잊혀지기 위한 행위들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

그냥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일과 같이 나는 매일매일 잊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같았죠.

내가 아무 의식없이 움직이는 대부분의 행동에는 그런 의식이 녹아 있을 거에요.

사회에 녹아들고 싶지 않은 반발심에, 한편으론 사회는 대체 왜 날 거부하는 걸까 하는 속상함에 그렸던 작업이에요.

신기하게도 제 그림이 한참을 지나선 저를 위로하더군요. 제 마음 지금은 대체 어떤 걸까요?



저는 사실 작년 마지막 20대에,  20대 초반에 정해둔 20대의 몇가지 목표들을 대부분 이루었어요.

실현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이루었고, 멋진 동료들도 많이 만나 행복했지만 글쎄요. 제일 중요한 한가지 이루지 못했거든요.

‘성립’이라는 필명은 저의 다짐들이 녹아있는 이름이에요.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자, 작가로서 자리잡고자, 저로서 오롯하게 살고자 지었던 이름.

그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쫓기는 삶을 살았답니다. 잔고에, 경쟁에, 사람에, 지금도 물론이고요.

그래서 저 작업이 더 와닿았나봐요. 저때와 지금의 저는 다르지 않거든요.

저로서 오롯하게 살고자 해놓고, 잣대와 허영을 경계하면서도 저는 계속해서 사회의 눈치를 보았네요.

멋대로 살고 싶었던 3년 전의 성립은 여전히 여기 앉아 있는데요.

30대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목표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들을 세울래요. 무슨 말인지 알죠?

매일매일 잊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 조금만 더 덜어놓고 살아요.

저의 20대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계절까지 안녕하세요.








2020 - 4 - 7


안녕하세요. 어느새 봄의 편지네요. 모두 건강하시죠?

이번 편지에는 3월의 일기를 보내드려요.

그럼에도 행복한 봄 보내시길 바라요



2020년 3월의 일기



묘한 봄이다.



좋은 날씨에 작업실 앞에 있는 그네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그때가 생각난다.

참 많이 놀았고, 많이 다치기도 했다. 잃어버린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몸 구석구석에 남은 흉터들은 일기처럼 써있다.



하루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두명이 한 자전거에 타면 나는 자전거를 밀어주는 식이다.

그러다가 한번은 바퀴에 손가락이 깔렸다. 울면서 집에 들어가는데 손이 전부 붉어질 정도로 피를 흘리고 있으니

어머니는 손가락이 잘린줄 알고 한걸음에 뛰어 나오셨다.  한동안 한손을 못썼다.

매 끼마다 수저로 내 입에 밥을 떠먹여주셨는데, 나는 거기 금방 익숙해졌다. 손가락에 상처는 쌉쌀했지만 매우 달콤했다.



어린 나는, 어쩌면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도, 그런 달콤쌉쌀했던 기억들은 나의 상처가 방패 역할이 될 거라고 믿게 했다.

그냥 모른척하고 살걸 그랬지, 상처는 방패가 아닌 것을. 그 사실이 두려워서 인지 자꾸만 담을 쌓게 되는지도 모른다.



작년 말에는 떠날 준비를 했다. 더이상은 힘들어, 작업실을 내놓고, 더이상 작업을 하지 않겠노라, 좀 쉬고, 다른 일을 찾아야지.



쌉쌀함이 더이상 달콤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구나.

한동안 글도 쓰지 않고,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그런 채로 몇 주를 보냈지, 무기력은 나를 잠식했다. 

그리고 수저를 들었다. 더이상 달콤하진 않지만 수저를 들 수 있는 힘은 있었다.

내게 방패는 없지만 높이 쌓은 담장은 있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만

때때로 그곳에 기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한다.  묘한 봄.









2020 - 9 - 9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럼에도 세월은 흐릅니다.



보내온 시간동안 아쉬운 하루 보다도 어서 끝나길 바라온 매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밤의 중턱에서 허공에 생각을 띄우던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럼 생각들은 안개처럼 제 시야를 가립니다.

흩어진 파편들을 한껏 모으고 나서도, 저는 여전히 흩어지는군요.



얼마 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했습니다.

젊은 작가이지만서도, 사실 저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흔히 말하는 ‘요즘애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유행하는 옷이나 물건 같은 것도 없으며 좋은 공간, 멋진 식당도 잘 알지 못합니다.

가끔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브랜드나 유명한 카페 이야기를 할 때 침묵을 지키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가던 곳을 여전히 찾고 비슷한 옷을 여러장 삽니다. 제 방은 그런 무난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구경할 때, 뭔가 모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나 여전히 동떨어져 살고 있는 걸까? 하고요.

제 어렸을 때 꿈은 ‘남들 처럼만 사는 것’ 이었거든요. 참 좇아가기 급급했지요.

제법 남들모습 근처라도 있어보니, 저는 닮기 위해 애쓰고만 있더군요.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을 마주하기 무섭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 편을 나누지요.



간혹 마음에 드는 물건 혹은 옷을 발견하고 갖고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동시에 누군가는 ‘유행이 지난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왜이렇게 좇아가기 힘들만큼 빠를까요?

저는 그래서 놓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내 멋대로 살기로,



매일 매일 시야에 덮인 안개를 걷어내며 나아가고있지만 덕분에 저는 행복한 삶을 삽니다.

빗물에 날개가 젖더라도 날개짓은 멈추지 말아야겠지요.

저의 밤이 길수록 그을 수 있는 선 또한 길어질 거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밤이 길어서 다행입니다.








2021 - 2 - 26


날이 여전히 춥습니다만 봄을 기대하는 하루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하늘이여, 그대도 그림자가 있습니까

나는 서서 한발자국도 내딛기 힘들 때,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해가 눈부시게 빛날 때, 새떼가 자유로워 보일 때,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지평선이 끝없이 평화로울 때

모래알들이 바람에 날릴 때,

사소한 광경을 목격할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아, 비의 경계가 보고싶구나. 빛의 단면과 무지개의 끝을.

달의 뒷면을, 해의 그림자를, 불이 꺼진 해를 보고싶다. 정말 보고싶어.

비의 경계는 살면서 한번 본 적이 있었지, 내 평생에 본 가장 진귀한 장면 중 하나였어.

다른 말로는 먹구름의 끝, 햇살의 경계. 그 중 어느 쪽에 설 지 선택할 수 있었지.

그래

나는 비를 흠뻑 맞기로 했어. 비는 3일 중 하루만 오니까.



“저는 사람이 싫어요. 질투가 존재하는 한 사람은 더이상 없죠.

사람은 위대하더라도 거대하면 안돼요.”

빈 종이에는 자꾸만 사람이 아닌 것들이 그려진다.

그게 아니라면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려졌다. 사람은 거대하면 안되니까.

내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만은,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던 것들은 제자리에 지키는 것들이지. 키 큰 나무들과

해변의 모래알, 하늘의 새떼, 지평선,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미지근한 눈물이 났었지.

나는 결코 커다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이 속에서.

계속해서 뭉클한 마음 갖고 살아야지.

꿈을 이뤘던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너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빛을 지나 등지고 걷는 것과 빛을 바라보고 걷는 것 중에는 후자를 고를게.







2021 - 5 - 6




오랜만이에요. 몇 달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성장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나아지는 건지 무뎌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으로는 나아진다고 느껴지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좌우명 중 하나를 꼽자면 무엇인가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요?



당신은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 있나요?



사무치게 아플 때 당신은 무얼 하나요?



최근 가장 벅차오른 순간은 언제인가요?



얼마 전 만났던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눴던 질문들입니다.

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부분 일과 작업에 연결시켰고

오롯한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어요.



[ 일은 내가 아니며 직업은 나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림과 글은 나의 작은 투영일 뿐이다.

실망한 점은 내가 어떤 형태인지 알기 전에 다른 것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결로는 차가운 유리잔을 찾아 맺히지만

담긴 물과 잔에 맺힌 물방울들은 내가 아니다.]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해요.

나는 저 질문들에 어떻게 다시 답할 수 있을까?



[코앞에 있는 목적과 목표만을 좇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손에 잡히는 것만을 좇아가는 삶을 지양한다.

장엄한 꿈은 손을 뻗지 못하는 곳에 있다.]



다음 계절에도 안부 전할게요.







2021 - 8 -16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안부 전합니다.

창 밖의 해가 유난히 밝은 날입니다.

뜨겁지않은 미지근한 볕이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이런 날에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게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오랜시간 예열이 필요한 날이었습니다. 

마음과 몸을 따듯하게 데핀 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창작의 불씨를 찾는 날이면 저는 뜨거웠다- 차가웠다가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은 담금질 같아 보이기도 하며 지나는 계절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3주 즘 전, 한참 무더위가 기승일 때부터 매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감이라는 것은 늘 저를 압박하지만 아주 즐거운 일이긴 합니다. 

덕분에 뜨거운 여름을 느낄 새 없이 작업실에 커텐을 내리고 그림자처럼 지냈습니다.

그와중에 보내는 이 편지덕에 받은 당신의 메세지들은 커텐 너머 풍경보다 더 경쾌하게 보였습니다.

많은 고민들과 사랑이 담겨있는 문장 덕에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갖고있는 모든 고민들은 건물의 기둥들과도 같습니다.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고민들은 당신을 만들고 지탱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답이 안나온다고해서 나아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생각은 나를 현재에 짓누릅니다. 벗어날 수 없게 말입니다.

온전한 고독과 위대한 삶의 증거인 거대한 기둥들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되려 신전의 기둥들 처럼 웅장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랑은 늘 예열에 불씨를 만듭니다.

제 그림과 글들도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1 - 11 - 8


안녕하세요.

6년째 보내는 편지입니다.



날이 찹니다. 최근에 쓴 작업노트를 짧게 적어 보냅니다.

가끔 저는 있지도 않은 고향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다음 편지는 내년이 되겠어요.



-



20년도 더 전 여덟 아홉살인가.

아침 밖으로 나서자마자 들이마시는 숨이 차고 낯선 날에 엄마는

면으로 만든 파스텔톤의 마스크를 씌워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하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저기는 강아지가 있네, 보도블록의 색은 붉은색이네,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들을 음악 삼아 들었다.

고독이란 그에게 없었다.

삶의 절망에서 모든 사람을 구원자와

구원자가 아닌 자로 구분 짓는 버릇이 생겼을 즘에는

나의 모습이 깨나 바뀌어 있을 때였다.

친구라는 단어가 낯설 땐 셋과 넷을 시기했다.

다섯은 더욱 그랬다. 하나와 둘은 외롭기에 남겨두었다.

이 버릇은 비교적 최근에 사라졌다.

요즘처럼 날이 찰 때면 간혹 면마스크의 촉감이 생각났다.

그래 거기에선 집냄새가 났다. 그 안에서는 고독이 없다.

가끔은 그 촉감을 생각하면서 집에 있으면서도 회향병을 겪었다.

회향병. 셋과 넷과 다섯에서 하나로. 수십에서 하나로.



극도로 긴장하거나 익숙하지 않을 때 시야는 좁아졌다.

아마 난 그래서 한 명과 두 명을 몇 년 동안 그렸다.

시간이 지나 그림 속 나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는

더 많은 사람을 그리고 더 커다란 것을 넣는다.

마치 거대한 사람이 된 것처럼.

그래서 나는 결코 거대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22 - 2 - 2



안녕하세요.  

이어진 겨울이 채 지나기도 전에 쓰는 편지입니다. 

눈이 오는 풍경도, 눈을 밟은 소리도 사람들도 고요하네요.

세 달에 한 번 쓰는 글들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생각들을 지나왔는지 상기시킵니다.



작업실 문을 열면

연필 냄새가 코에 닿고 밤새 식은 공기가 피부에 닿습니다.

벽에는 점점 손때가 묻고 누렇게 바랜 포스터들이 여전히 붙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발걸음이 있었는지 3년 전 푸른빛이 돌던 바닥에 카펫은

깨끗한 곳 찾아볼 수 없이 여기저기 회색빛이 되었고요.

그 위로 접이식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깔고 앉으면 그간 작업했던

낱장의 종이들이 쌓여 커다란 육면체의 형상을 이루는 게 보이는데요,

그 형상은 제가 그림을 그리며 침묵했던 거대한 시간들의 증명이자 용기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공간에 모든 것이요.



내적 평화는 정적(靜的)에서 옵니다.

그러나 또한 불안도 정적(靜寂)인 길이죠.

제게 둘은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구분 지어질까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밖으로 외쳐도 듣는 이 없는 이 고요한 길에서는

속으로 외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이를 외치는 일은 메아리만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은

소란스러운 속을 드러내는 일인 듯합니다.

꽤나 많은 불안을 토해 쌓인 제 원고들처럼요.

그래서 나의 평화는 불안의 적적한 길을 지나,

멈출 수 있는 사람에게 오는가 봅니다.



날이 여전히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평화로운 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22 - 4 - 20


안녕하세요.

겨울의 끝을 지나 어느 꽃은 벌써 초록 잎을 맞이하기도,

여전히 꽃잎을 붙잡고 있는 나무들도 있는 계절입니다.

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내는 편지는

저를 반성하고 성장시키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쁘고 화려하고 즐겁고, 그런 감정적인 일들보다는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떠셨나요? 보내주신 메시지들은 늘 경건한 자세로 읽습니다.

많은 감정들이 오간 계절을 보내셨더군요.

사소한 것들을 공유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제겐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이번 5월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업에 녹인 제 생각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다음 계절로 이어갈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계절까지 건강하세요.



-



“사람은 울면서 세상에 왔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울음으로 시작한 세상.

웃음으로 서두를 시작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는 말도 확립된다.

눈물의 의미는 도를 넘은 기형적 세상을 맞이한

타인의 절규일 수도 있겠지만
축포 소리와 같은 순수한 나의 비명일 수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후자의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삶의 경험들은 그 생각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손윗사람들의 말마따나 삶의 흐름은 포물선과 같다고 했다.

완만하게 성장하다가 가파른 곡선으로 갑자기 추락하는 그런 것.

높낮이와 같은 맹점에 이끌리는 모든 말들을 경계한다.

상승이니 추락이니 하는 그런 단어들 말이다.

나는 상승하기도 싫으며 추락하기도 싫다.



결과적으로 이미 뿌옇게 변해버린 그 생각에는

자책과 더불어 자기연민이 녹아있다.



일생 동안 앞으로,

혹은 위나 아래로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연민.

그리고 그렇게 믿어왔던 나에 대한 자책.

위와 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을 때

땅에 붙어있는 모든 것들을 어울러 볼 수 있었다.



우주라는 단어는

[Observable universe 관측 가능한 우주]을 의미한다.

그 범위 밖의 불확실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확장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확장되어야 한다.







2022 - 7 - 8



벌써 셀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났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흐르는 생각을 밑으로 떠나보내다보면 때때론 한 곳에 멈춰 고이곤 합니다.
그래도 요령은 있어서 그 깊이가 발목까지 차기 까지는 기다렸다가 발을 빼곤 합니다.
그 늪에 빠져 고통받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발을 굴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산책에 빠졌습니다.
걷는 동안 그래도 생각은 한껏 내뱉는 숨에 섞입니다.

좋은 일도 많고 그렇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사실 나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을 치환한 일일 수도, 슬픔은 타인의 기쁨을 치환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면 내어준 것과 받은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무감각입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울면서 태어나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이번 계절에는 무뎌지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을수록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측이란 것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겠습니다. 모든 일들은 태엽처럼 맞물려 예측가능한 사실을 만들어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톱니바퀴 하나하나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겠지만요.
우리를 무기력으로 이끄는 것도 상기 마찬가지겠죠. 한 계절동안 대부분의 일에 무뎌진 이유를 곱씹어보았습니다.
이 사실 기저에는 매번 최악을 생각하는 저의 버릇이 있습니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있습니다. 한참 후 제가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아 나는 실패에 지쳐있는 상태구나 내가 늘 실패에 대비하고 있구나.
물 밑으로 내려가기는 쉽고 위로는 올라오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늘 실패를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항상 그것에 익숙해지려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평생에 어떤 경험들로 이루어진 것일까?
해야만 해서 했고 할 수 밖에 없어서 한 일들이 결국 실패했다면, 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실패했다면,
내가 놓친 톱니바퀴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내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 통증이 있기 때문이겠지.
무기력과 무감각에서 흘러내린 생각들은 고통스러우니까.
성공의 권태는 그토록 짧고 실패의 피로는 가시질 않는구나.”
통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불안한 것은 때로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한 계절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글로 옮기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모쪼록 짧은 실패의 피로감을, 오래토록 성공의 권태를 즐기실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이번 편지에는 10년가까이 된 저의 그림들을 보냅니다.
오래 전에 제가 그린 그림들은 또 어떻게 느끼실 지 궁금합니다. 가을까지 건강하세요.







2022 - 10 - 3



떨어져야만 해서 떨어지는 빗소리로 시작하는 10월,



며칠 전 산책 중 불어오는 차고 마른 바람에서

수년 전 저린 기억들이 실려온 것에서 가을을 느꼈지요.

아, 편지를 보낼 때가 되었구나.



읽다 보면 먹먹해지는 글들은 누군가의 사유가 아니라

사실의 나열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흐르는 강을 멍하게 바라보고 바람을 맞고

빗소리를 듣는 것들이 그와 같은 것이겠죠.

저는 최근 과학 서적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용들은 분명한 사실들이지만

사이사이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 놓아서

사유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어떤 것은 흘러야만 하고 어떤 것은 떨어져야만 하고 어떤 것은

거슬러 올라야만 합니다.

어떤 것은 그 시점에 부서져야만 하고 끓어야만 하고

부딪혀야 하고 갈라져야 하고

합쳐지고 불타고 빛나고 녹고 서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그래야만 하니까요.

어쩌면 철학에서 실재론이 말하고 있는 것 일지도요.



그런 섭리에의 직감이 모두에게 뿌리깊이 내려가 있음을 생각합니다.

지나친 감탄을 느낄 때나 벅찬 영감을 느낄 때

도저히 밖에 나가지 않고는 못버틸 것 같은 느낌을 아시나요?

해야할 말이 목 끝까지차오를 때의 느낌과

무엇이든 그리고 써야만 누울 수 있는 밤을 아시나요?

그 직감들을 태워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사라진 불꽃처럼 미지근한 연기만 풀풀 내뿜을 때도 있겠습니다.

다만 명심할 것은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요.



이번 비가 그친 뒤에는 많이 쌀쌀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에 또 봬요. 건강 조심하세요.







2022 - 12 - 22



안녕하세요.

22년의 모서리에 서있는 날입니다.

이번 겨울은 눈이 잦네요. 덕분에 온 세상이 하얀 아침에 편지를 씁니다.

시야에 공해처럼 다가오는 자극적인 글들과 기사 제목들, 주위에 거짓과 경멸의 단어들을 덮는,

담백하고 아름답게 내리는 눈발 같은 문장들을 전달 드리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올 한해의 성과나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과 같은 질문들도 눈 사이로 던져두고

지난 날에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았는지 세상이 얼마나 하얘졌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우울함이 다하면 작가님의 작업도 끝이 나나요?” 하고 누가 물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행복하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쁘면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할래요. 사랑하면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거에요.”

우리 이야기의 고갈은 없어요. 저는 계속해서 이렇게 대화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와 대화하고 싶을 때는 시야에 아무 것도 두지 않으려 해요. 시야에 빈 여백만 채우는 거에요.

눈을 감으면 되지 않느냐 묻는다면 눈을 감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말 하고 싶어요.

눈을 감으면 생각에 진 거니까. 나는 항상 생각을 이겼으니까.

생각에 짓눌리는 사람은 사실 늘 생각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것은

초록색도 아닌 여느 때처럼 내리는 하얀 눈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과 같겠죠.

해를 등지고 가면 내 그림자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을

불현듯 찾아온 마음의 출처를 두고 자책하지 않을 것을

아무리 외쳐도 처연한 세상에서 나혼자 유난인 것은 별 일이 아닌 것을

사실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눈발처럼 날립니다. 올해 시야에 빈 여백을 두고 이겨낸 생각들을요.

우리는 언제나 처럼 우리를 이길 겁니다.




예전 일기에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행복하냐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선뜻 답하진 못했다.

작업을 하며 나는 사라진 기억들을 되찾으려 애쓴다.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 나는 커다란 누군가가 되었다가,

한낱 볼품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가.

질타를 받기도 했다가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망상에 빠진다.

다른 말로는 희망이다.




오늘은 세상이 하얗습니다. 뭐든 그리는 상상을 합니다.

다른 말로는 희망입니다.

봄이 되면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모쪼록 다가오는 한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23 - 3 - 26



움츠러든 색들이 서서히 피는 계절입니다.
무채색으로 가득하던 계절이 지나고 날이 풀려

얼마 전에는 겨울이불을 봄이불로 바꾸었습니다.

가벼워진 이불만큼이나 길어진 해에 눈도 조금씩 일찍 떠지는 날입니다.




알 수 없는 날의 연속입니다.

새해 되자마자 저는 그간 미루고있던 작업들을 시작했습니다.

해가 짧았던 탓에 밤이 길어 고민도 많았습니다.

일상이라곤 없는, 그림만 그리고 생각만 깊어지는 무채색같은 하루들을 겨우내 보냈습니다.

해야할 수십가지 일들을 마무리 짓고 이제야 한숨 돌리네요.




그렇지만, 물감으로 검은색을 만드는 가장 쉬운 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모든 색을 넣고 섞는 것 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두울수록 우리같은 사람은 다채로운 혼자만의 밤을 보내지요.

드디어 무채색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무엇들을 하나씩 꺼내보여줄까요.




큰 일들이 지났지만 아직도 끝내지 못한 작업들이 많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일주일은 일찍 꽃이 핀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것을 눈에 담는 계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3 - 7 - 10


안녕하세요.

여름입니다. 최근에 저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집 곳곳이 빈 것 같으면서도 낯설음 속에 익숙한 물건들이 있는 것이 좋아서

더이상 새로운 물건들을 채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저의 삶을 돌아보곤 합니다.

생각은 계속 변하고 생각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면서도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혼자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붙어 떨어지는 과정 속에서,

비좁은 곳 사이는 바위에서 모래로, 씨앗은 열매로,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기쁨을 적을 때도 슬픔을 적을 때에도 연필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불가항력적인 상실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다른 모습으로 변모 되어야 합니다.

창 근처에 앉아 창문 밖에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이 요즘의 낙인데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평생에 한 곳에서 나고 자라 고목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다가도 그것만큼 행운인 것이 없는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평생 변모하니까.

그들이 아름다운 녹음을 포기하고 잎과 꽃 등을 낙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철저히 그들을 위한 일입니다.

잎을 모두 떨어뜨려야만 겨울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

앙상한 가지들이 안쓰러운 것은 우리들의 오롯한 착각인 것.

때문에 우리는 변모에서 조금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죠.

어떤 틈으로 들어가던, 어떤 방향으로 가던.



다음 계절까지 안녕하세요.







2023 - 9 - 28




안녕하세요.




벌써 단풍이 떨어지는 계절이 왔네요.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왔구나.

생각하고 한참 산책을 하다가 편지 쓸 때 구나. 생각했습니다.

바뀌는 온도에 편지 생각을 하셨는지요.

저는 미련없이 떨어진 나뭇잎들이 발에 밟히며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편지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보내는 날짜가 달이 환한 추석이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지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편지를 쓰는 것이 모이니 양이 꽤나 되어서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참 특이한 일입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는 시인 릴케와 그를 흠모하는 팬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 있습니다.

릴케는 편지에서 뼈있는 충고를 하기도 하지만

자기고백적 서사 뿐 아니라 독자에게 얻는 위안도 분명 있어 보였습니다.

그는 살면서 1만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 필연의 편지들은 그를 고독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힘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덧없는 것은 나눔 없고 내면의 확장 없는 창작의 삶이 아닐까 했구요.

그의 편지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요함은 헤아릴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 안에 소음과 움직임이 들어 있는 이유지요.

멀리 떨어진 바다까지 다가와 이 모든 것과 어우러져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면,

선사 시대 화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음이 울리겠지요. 당신에게 바라건대

확고한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위대한 고독이 활약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고독은 당신의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고독은 앞으로 당신이 경험할, 그리고 실행할 모든 일 속에서 익명의 영향력을 띠고

조용히 본질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중략 –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속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가끔 우리를 자연의 위대한 존재들 앞에 세우는 상황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 중략 –

나는 당신이 그곳으로 빠질 위험을 극복하고

험난한 현실 어딘가에서 고독하고 용감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누구보다 고독 했을 그는 그 속에서 많은 것을 통달한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사라질 수 없는 것을 인정한 것은 물론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고요는 내 속에 많은 소리들을 듣게 합니다. 한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단어를 말하지만 작은 절망도 함께한다는 것을 알지요.

저도 그러합니다.

글을 보내며 내면을 확장합니다. 다음 계절에 또 뵙겠습니다. 부디 고독하고 용감하게.








2023 - 12 - 13




안녕하세요.

올해의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더 이상 춥지 않은 겨울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중에

주말부터는 굉장히 추워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을쯤부터는 비가 오고 나면 북쪽에서 온 찬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어느 한 곳은 미리 시리곤 합니다.

연말이라 그럴까요?




앙상해진 나뭇가지들과 건조한 공기, 무채색으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둘씩 오는 연말 안부 인사들이 따듯합니다.

물론 남겨주신 메시지도 그렇습니다.

이번 해에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있어 영광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생각이 들 때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행운입니다.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도, 쓰는 와중에 돌아볼 한 해가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겠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가 어땠냐는 질문보다는

오늘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이었는지 묻는 것이 더 즐겁게 느껴집니다.

되돌아오는 상대의 대답에 저도 기분 좋아지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우리 존재를 애써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금의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특별한 것을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야 잘 지냈다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올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어떤 특별한 일을 했는지,

무슨 성과를 이루었는지는 제게 중요한 일이 전혀 아닙니다.




얼마나 평화로운 날들을 지낼 수 있었는지,

매일의 명상은 어땠는지.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지, 계절마다 자연에 얼마나 가깝게 있었는지.

정신없고 바빴던 한 해였으나 지나 간 일일뿐입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오늘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일이셨나요?

그럼에도 사랑만을 남기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해 다음 계절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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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lib / 성립



1991 Born in seoul. korea


2016 BFA of Finear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2019 Belong to
the SPEEKER  [SM ENTERTAIMENT & ESteem]






EXHIBITION

solo



2023





2020



2019



2016



2022





2021





2020

KB KOOKMIN BANK 독립영웅 11인의 청춘전 – KB maru . Seoul, Korea

GRIMDOSI 2020 – SEJONG center. Seoul, korea

APoV 너와 내가 만든 세상 – Bluesquare NEMO. Seoul, Korea




2019

BOOK+IMAGE7 : before reading – Mimesis art museum . Seoul, Korea

GRIMDOSI 2019 – seoul 284



2018

Time of Black & white  –  SODA artmuseum. Suwon, Korea

GRIMDOSI 2018 – ara art center. Seoul, Korea

독립, 그 이상의 역사 – 화성 사람들 – hwaseong museum. Hwaseong, Korea

GRIMDOSI : cinema code 2018 – The cage .Busan, Korea

subrleness of the organic thinking – Brazil Hall. Seoul, Korea




2017

2nd NEW DRAWING PROJECT –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Korea

GRIMDOSI 2017 – LAYER 57. Seoul, Korea

Another way of telling – SIMA (SUWON IPARK MUSEUM OF ART)

TIME : CONNECT – Y gallery. Seoul, Korea




2016

young creative korea 2016 – ara art center. Seoul, Korea

tying , untying – takeout drawing. Seoul, Korea

unusual sympathy – gallery meme, Seoul, Korea

R=VD – changwon changdong art center. Masan, Korea

shinee world V special exhibition – smtown@coexartium. Seoul, Korea




2014

contact – seoulsquare  mediafacad. Seoul, Korea




2012

front=back=before=after -125workroom. Seoul, Korea










2023






2021

COEX PR – a New Year’s celebration Art

TAIHE MUSIC GROUP(china) – Emily [vagabond] – MV directing

Universal Music Group (KOR) – YOUHA – [zzz] MV directing

S.TREE – concept video Art collaboration 2

CUSTOMELLOW – 2021 spring event Art collaboration

VOGUE – DIOR magazine Art collaboration

BMW – THE4 – Art collaboration

CUBE entertaiment – KINO, unordinary sunday – [Sunflower] MV directing

KOLON sport – 2021 S/S art collaboration

LF licorso – 2021 S/S art collaboration

COEX CMC – [BLOSSOM THE HOPE] festival art collaboration

Off-White – “OOO” art collaboration

SAMSUNG – T1 FAKER EDITION Art poster

KB KOOKMIN CARD – card plate art collaboration

TEXTILE AREA – F/W art collaboration

DEARS – art collaboration

A PIECE OF - art collaboration

Playce Camp JEJU – ‘art away art’ project artist room collaboration

The Void - art rug collaboration

LG - LG gram art collaboration




2020





2019





2018

FeelGhood music – YOONMIRAE [NO GRAVITY] teaser video

OLYMPIC – 2018 Pyeongchang olympic – closing ceremony drawing animation mapping

NUVO10 – 2018 S/S art collaboration

uNrmL – concept video directing & art collaboration

BELIER – 2018 S/S art collaboration

DESCENTE – 2018 F/W art collaboration

Abib – handcream art collaboration

NAVER onstage – art collaboration with Car, the garden




2017


2016





2015





BOOK


2024







2023





2020



2019





2018

MINUMSA ; 민음사 – 작가를 짓다 (drawing) – 최동민

MIMESIS – 문학의 새로운 세대 (drawing) – 손아람

자화상 – 틈 – 성립




2017




2016





EXPERIENCE


2022






2021

Featured by Binance / auction

KAKAO KlipDrops / 24 future collective / auction

seoul design week reboot / lecture




2020

NAVER / 영감의 살롱 / salon

Kyunghee univ  / special lecture

LOTTE / special lecture




2019

lamina / drawing class

customellow / drawing class

D.NOMADE  / special lecture

HYOSUNG  / [Some Connected] mentoring program & exhibition

Herald design forum / [bro.colle class] special lecture




2018

Mercedes benz korea / HANSUNG motors  – mentoring program

NIKE & 1986production – [creative eyes] special lecture

D.NOMADE YCK2018 LIVE TALKS – special lecture

chwihyang.gwan (취향관) – art salon

Korea Animation High School – special lecture

SM entertaiment – [creators session] drawing class




2017

SM entertaiment – [creators session] drawing class

IKEA – [Hej Geosil!] drawing class

Seoul national univ s&t – special lecture